【崔-시론(詩論)】 재미로 읽는 전쟁 이야기

최승범 | 기사입력 2018/11/06 [15:33]

【崔-시론(詩論)】 재미로 읽는 전쟁 이야기

최승범 | 입력 : 2018/11/06 [15:33]

 

▲  헤로도투스의 페르시아전쟁- 배경이 된 영화 <300>의 한장면 ©



 

인류와 전쟁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개인 간의 싸움부터 집단 간의 싸움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싸워왔다.

 

개인이나 집단이 끊임없이 싸웠던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즉. 인류는 최소한의 생존 여건을 위해 항상 경쟁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개인이나 집단 간의 싸움이 발전하여 좀 더 조직화된 싸움, 즉 전쟁으로 이어졌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전쟁은 지금까지 이어졌고 그 전쟁의 해악에 대한 인류의 지속적인 환기와 예방 및 억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전쟁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전쟁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고 인간의 삶의 질과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930여 차례의 외침을 받아왔으며 지금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로마의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남북이 분단되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고 주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말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각자는 비록 군인이 아니더라도 전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을 갖고 슬기롭게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이집트와 주변 국가 및 히타이트의 전쟁

 

대개 전쟁사는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서술한 ‘페르시아 전쟁사’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사’를 저술하면서 제목을 ‘히스토리아’(Historia)라고 명명하였는데 ‘역사’(History)의 어원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페르시아 전쟁은 기원전 492~479년에 벌어진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서양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전쟁이다. 그 이전에도 전쟁은 있었다. 바로 '트로이 전쟁'이 그것이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단지 기원전 13~12세기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인간과 신의 전쟁인 '신화 속의 전쟁'이다.

 

이 트로이 전쟁은 구전으로 전해 오던 것을 기원전 9~8세기경 호메로스가 저술한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기술되어 있어 후세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트로이 전쟁은 그저 신화 속의 전쟁으로만 알고 있다가 1870년 트로이 유적지가 발굴되어 실제 전쟁이 있었음임이 밝혀졌다. 이와같이 서양 역사에서 기록된 최초의 전쟁은 기원전 5세기에 발생한 '페르시아 전쟁'이다.

 

그러나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와 서아시아 일대에서는 페르시아 전쟁 훨씬 이전부터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집트 지역은 기원전 3100년 전후에 고대 이집트 왕국으로 통일되었다. 이집트는 계속되는 정복 전쟁을 통해서 이집트와 시리아 지역에 대한 통치를 공고히 다졌다.

 

기원전 1458년에 발생한 '메기도(Megoddo) 전투'는 세계 역사에 최초로 기록된 전투로서 투트모스 3세가 이끄는 이집트 신왕국과 카데시(현재 이스라엘 부근의 국가) 사이에 일어난 전투이다.

 

메기도는 기름진 초승달 지대의 주요 지점에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육로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를 장악할 수 있는 도시였다.

 

투트모스는 이집트에서 출발하여 하루 약 15마일씩 행군하여 약 9일 만에 메기도 부근에 도달한다.

 

투트모스는 메기도 부근에 도착해서 어느 진격로를 통하여 메기도를 공격할 것인지 전술토의를 하였다.

 

메기도에 이르는 접근로는 세가지 길이 있었는데, 하나는 최단거리이지만 좁고 험한 통로였으며 나머지 두 통로는 멀리 우회하는 통로로 양호한 접근로였다. 부하 장군들은 단거리 통로는 적이 매복할 수 있기 때문에 우회하는 진격로를 택할 것을 건의 하였지만 투트모스는 단거리 진격로를 택한다.

 

그는 적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므로 적의 허를 찌르고 기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거리 진격로를 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단거리 접근로를 통하여 메기도를 향하여 진격하였는데 투트모스의 예상대로 적은 우회 접근로에 부대를 배치하였던 것이다.

 

투트모스는 공격에 앞서 전부대가 도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병력을 집중하여 밀집대형으로 적을 공격하였고, 치열한 전투 끝에 이집트군은 승기를 잡았고 카데시군은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집트군은 이러한 유리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였다. 병사들이 전리품을 갈취하기 위하여 무질서하게 도시 외곽에서 약탈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집트는 결정적 승리를 목전에 두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전기를 상실하고 말았다. 

 

계속된 전투 결과 결국은 메기도를 점령하였지만 7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이집트는 전쟁을 조기에 종결지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투트모스의 전략적, 전술적 혜안으로 이집트는 궁극적으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활발한 정복 활동을 벌이던 이집트는 국내의 종교개혁에 집중하느라 대외 확장을 멈춘다.

 

그러는 사이 히타이트가 – 기원전 18세기경에 아나톨리아(현재 터키 지역) 일대에 형성된 왕국으로 기원전 1180년 멸망하였다.- 시리아 지역을 장악하고 이집트의 기득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집트와 히타이트는기원전 14세기 말부터 13세기 중엽까지 시리아 지역의 패권을 놓고 끊임없이 충돌한다. (계속)

 

 

 

최승범 한국열린사이버대학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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